대한민국에서도 점차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는 개들의 역할이 확대되고 있습니다. 단순한 반려동물을 넘어 시각장애인을 돕는 맹인견, 군 임무를 수행하는 군견뿐만 아니라 재난 현장에서 인명을 구조하는 구조견, 그리고 심리적 상처를 극복하게 도와주는 치료견까지, 개들은 우리 사회에서 중요한 전문 인력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특히, 구조견과 치료견은 극한의 재난 현장에서 생명을 구하고, 마음 깊은 상처를 치유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2022년 광주 화정아이파크 붕괴 사고와 세월호 참사 이후 PTSD 회복 프로그램에서 이들의 활약은 뚜렷하게 드러났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실제 사례를 바탕으로 구조견과 치료견의 헌신적인 활동과, 은퇴 후 삶에 대해 깊이 있게 조명해보고자 합니다. 또한, 앞으로 우리가 이들에게 어떤 책임과 보답을 해야 하는지 고민해 보는 시간을 가져봅니다.
구조견: 광주 붕괴 사고에서의 실전 활동
2022년 1월 11일, 광주광역시 서구 화정아이파크 신축 아파트 외벽이 붕괴되는 대형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당시 현장에서 실종된 작업자들을 수색하기 위해 소방당국은 중앙 119 구조본부 소속 구조견 5마리를 긴급 투입했습니다. 그중 대표적인 구조견이 바로 ‘해피’와 ‘백두’입니다. 이들은 구조대원들이 접근하기 힘든 좁은 틈, 무너진 잔해 사이를 기민하게 탐색하며 실종자의 흔적을 찾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특히 해피는 붕괴 직후 72시간 이내 가장 중요한 ‘골든타임’ 동안, 마지막 생존자의 위치를 탐지하여 구조 성공의 주역이 되기도 했습니다. 구조견의 역할은 단순히 냄새를 맡는 수준이 아닙니다. 이들은 극한의 소음, 먼지, 불안정한 구조물 속에서도 침착하게 움직이며, 인간의 생존 신호를 감지하는 훈련을 받습니다. 광주 사고 당시 구조견들은 하루 6시간 이상을 교대하며 수색작업에 투입되었고, 체력과 정신력을 시험받는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이후 구조견 해피는 ‘국가재난영웅’으로 소방청 특별포상을 받았고, 국민적 관심 속에서 은퇴 후 가족과 함께 편안한 삶을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광주 붕괴 사고는 구조견이 재난 대응의 최전선에 서 있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에게 다시금 각인시킨 사건이었습니다.
치료견: 세월호 이후 PTSD 회복 현장에서의 기여
2014년 세월호 참사는 단순한 해양사고를 넘어 대한민국 전체에 깊은 심리적 상처를 남겼습니다. 특히 생존자, 유가족, 구조대원들은 심각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증세를 보였고, 이를 치유하기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이 마련되었습니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힐링도그 프로젝트’였습니다. 힐링도그 프로젝트는 안산시와 민간단체가 공동으로 주관해 시작되었으며, 총 8마리의 전문 치료견이 투입되었습니다. 치료견 루시(골든 레트리버), 벤지(래브라도 레트리버) 등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이들은 유가족 커뮤니티, 심리치료센터, 학교 등을 방문해 유가족과 생존자들이 자연스럽게 감정을 표현하도록 도왔습니다. 사람과의 대화조차 힘들었던 이들은 치료견과의 교감 속에서 마음을 열기 시작했고, 실제 연구 결과, 치료견과 교감한 그룹은 불안 수준이 30% 이상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특히 루시와의 만남을 통해 수개월간 말을 하지 않던 한 학생이 처음으로 “괜찮아”라는 말을 꺼낸 사례는 언론에도 소개되며 감동을 자아냈습니다. 치료견은 심리치료사와 함께 동반 프로그램을 구성해 세심한 주의 아래 활동합니다. 이들은 동작 하나하나가 훈련되어 있으며, 환자의 정서적 반응에 민감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전문적으로 양성됩니다. 세월호 이후 시작된 치료견 프로그램은 PTSD 환자뿐 아니라 자폐스펙트럼 장애 아동, 우울증 환자, 노인성 치매 환자 치료에도 확대 적용되었고, 현재까지도 꾸준히 발전하고 있습니다.
은퇴한 구조견과 치료견의 삶은 어떤가?
평생을 인간 곁에서 봉사한 구조견과 치료견은 대개 만 8세 전후에 은퇴합니다. 은퇴 시점은 활동능력 저하, 건강 문제, 노화에 따라 판단되며, 각 기관별로 정밀한 은퇴 평가를 진행합니다. 2023년 소방청 자료에 따르면, 2020~2022년 사이 은퇴한 구조견은 총 41마리였고, 이 중 약 70%는 일반 가정에 입양되었습니다. 은퇴한 구조견 ‘해피’ 역시 광주 현장 구조대원의 가정으로 입양되어 여생을 보내고 있습니다. 해피는 현재 하루 두 번 산책을 하고, 꾸준한 건강 관리를 받으며 조용한 은퇴 생활을 누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은퇴견이 해피처럼 행복한 여생을 보내는 것은 아닙니다. 일부 구조견과 치료견은 입양처를 찾지 못하거나 건강이 악화되어 보호소 생활을 이어가야 했습니다. 심지어 일부는 보호기간이 끝난 뒤 안락사를 선택받는 안타까운 사례도 존재합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소방청은 ‘은퇴구조견 입양 캠페인’을 실시하고, 은퇴견을 입양한 가정에 사료비와 의료비 일부를 지원하는 제도를 마련했습니다. 또한, 국회에서는 은퇴견 복지법 제정 논의가 본격화되었고, 은퇴 후 치료견들의 복지를 위한 전용 쉼터 설립도 추진 중입니다. 치료견의 경우, 은퇴 후에도 학교, 복지시설 등에서 자원봉사견으로 활약하거나, 훈련사와 함께 조용히 은퇴 생활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루시 역시 정식 활동 은퇴 후 안산시 청소년상담센터에서 ‘명예 힐링도그’로 등록되어 아이들과 지속적으로 교감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구조견과 치료견의 은퇴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여정의 시작입니다. 이들이 평생을 인간을 위해 헌신한 만큼, 우리 사회가 책임지고 존엄을 지켜야 합니다.
구조견과 치료견은 우리가 절망하거나 고통받을 때 가장 가까이 다가와준 존재입니다. 2022년 광주 붕괴 사고의 해피, 세월호 이후 유가족 곁을 지킨 루시처럼, 이들은 인간 사회의 어두운 시간에도 묵묵히 함께해 왔습니다. 이제는 그들이 은퇴한 후에도 존중받으며 행복한 삶을 이어갈 수 있도록 우리의 관심과 지원이 필요합니다. 단순한 보호를 넘어, 진심 어린 보답과 제도적 지원을 통해 구조견과 치료견이 존엄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들은 한 번도 우리를 외면한 적이 없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그들에게 답할 차례입니다. 한 생명을 위해 달려온 네 발자국. 그 소중한 걸음을 우리는 영원히 기억해야 합니다.